2019. 7. 11.

2019년, 일본의 한국 공격에 대한 누구나 알만한 예상 결말.. 그리고 앞으로 일본을 대하는 자세..






2019년 일본의 한국경제 기습공격은 일본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멸하는 일본을 보여주는 결과로 끝날 것이라 확신한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황의 불리함을 극복하려고 어쩔 수 없이 미국 진주만을 기습공격 했지만 결국은 처참한 패배로 끝났듯이 이번 한국경제 기습공격 역시도 그런 충격적 패배로 종결될 것이다.
 
일본은 경제협력을 협의한 G20 개최를 끝나자마자 전격적으로 한국을 기습공격 했다. 마치,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에 전격적으로 진주만 공습을 퍼부었던 것처럼...
 
역시, 일본답다. 앞에서는 웃으면서도 뒤로는 칼을 꼽는 이중적이고 간사한 습성이 몸에 밴 탓에 너무도 당연하듯 뻔뻔하고 야비한 짓거리를 한다.
 
하지만 일본 전국시대 그 숱한 전투에서도 전격 기습공격이 성공했던 경우가 아주 드물었고, 허망한 몰락으로 끝났듯이 이번 기습공격 역시도 치욕적인 일본의 패배로 끝날 것이다.
 
현 대한민국의 중년층 이상은 일본이라면 최소한 기술력이나 경제적으로는 두려워하거나 뛰어넘지 못할 앞선 국가로 생각했었다.
 
그 예전 일제라면 최고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지금 중국산을 국산에 한참 못 미치는 제품으로 인식하듯이 그 시절에는 국산은 일제에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았었다.
 
그런 인식으로 비단 기술력뿐만 아니라 사회 각 모든 분야에서 일본이 앞서고 있다는 것을 비록 자존심은 상하지만 인정하고 뛰어넘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국경제를 위해 일본은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추종해야할, 관계를 이어가야할 상대로 봤다. 물론 그런 인식 한편에는 이미 우리를 지배했던 나라, 훨씬 기술이 앞선 나라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 되어있었다.
 
우리나라 정서가 이랬기에 일본 역시도 한국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자기가 기술을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보다 한참 뒤쳐진 나라.. 그렇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망가트려 버릴 수 있는 나라..
 
일본의 그런 자신감은 일제 침탈시대부터 형성된 우월감에 한국 우파(독재)정권의 친일 정책이 더해져 노골적 한국 무시로 이어졌다.
 
그런 한국 무시는 한국 무시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오만함으로 일제 침탈에 대한 사과도 거부로 이어졌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한국을 일본에 도움 받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국가라는 억지논리로 한국을 일본 국민들과 세계인들에게 나쁜 국가로 매도해왔다.
 
이미 그렇게 주입되어버린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국의 중년 이상들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일본을 은연중에 기술적으로 앞선 나라라고 믿고 있고, 일본 중년 이상들은 한국을 자신들이 과거에 지배했거나 기술을 전해준 한참 후진국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울고 세상은 돌고 돈다.
 
이미 그들이 전통적으로 앞선 기술 분야는 어쩔 수 없었지만 서서히 일본을 앞서는 분야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민족의 우수성과 세상의 변화가 잘 맞아 떨어지면서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첨단산업분야에서 조금씩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
 
어느덧 현 시대에 더 큰 영향력이 있는 분야에서 한국은 오히려 일본보다 선진국이고 더 큰 경쟁력을 가진 앞서가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변화는 비단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국제적 모든 분야에 걸쳐 한국과 일본의 위치를 뒤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 아시아에서는 일본만이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하던 것도 어느덧 지난 옛 시절로 흘러가버리고 한류라는 새바람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는 대한민국 사람들을 점점 깨어나게 만들었다. 젊은이들은 일본을 앞선 선진국이기 보다는 그저 경쟁 상대정도로 생각하고 일본을 동경하거나 두려워했던 사람들은 이제 일본도 한물간 나라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일본을 앞선 나라로 생각하기 보다는 이제 한번 해볼 만한 나라, 그 정도라면 뛰어넘을 수 있는 나라, 우리가 결국 이길 수 있는 나라로 생각이 변하게 되었다.
 
인식의 변화는 무섭다. 생각하는 대로 사람은 변한다. 사람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그렇게 일본과 일본제품(일제)에 대한 생각이 변하고 입장과 위치도 변했다. 이제 더 이상 일제가 대체 불가의 위치는 아니다. 일제가 최고라던 말은 이미 한참 지난 추억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일본제품을 굳이 사지 않아도, 굳이 가지 않아도, 굳이 먹지 않아도 그 정도 대체품은 얼마든지 있다. 그냥 습관적으로 사서 썼던 것뿐이기에 바꾸거나 끊어도 그만인 시대가 된 것이다.
 
아베와 그 추종무리들의 오판으로 한국을 기습공격 했기에 이번 기회에 끊을 기회를 잡은 것이다. 아베류들은 아직도 그 옛날 생각에 빠져 그 예전에 했던 습관대로 한국을 무시하고 도발했던 것이다. 한국을 도발하면 그 예전처럼 한국이 잘못 했다며 비굴하게 굽실거릴 거고 그것을 일본 국민에게 홍보에 권력을 굳건히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변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끌려 다니면 안 된다는 생각과 이 참에 일본을 확실히 따라잡자는 자존심이 합쳐져 일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일본제품을 없애버리거나 다른 대체품으로 바꾸는 큰 흐름은 점차 대세가 되고 그 대세는 일반화 되어 일본보다는 국산, 일본보다는 제 3국이 더 낫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고 있다.
 
이제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자신들의 과거 추억에 빠져 한국노인들이 일제 안 쓰고 일본과 관계가 멀어지면 나라가 망한다며 난리를 칠거라는 착각은 단지 착각으로 끝나지 않고 혹독한 대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 예전 동아시아(우즈베키스탄)의 7세기 고구려 사신도 벽화를 보면 일본의 사신은 신발도 없이 맨발로 궁궐을 방문했다.
 
그 사신도를 보면 7세기 일본 문화 수준이나 경제력은 사신(외교관) 임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다니는 것이 일상인 후진국인 것이다. 원래 그들은 그런 수준의 섬나라 족속들이다.
 
실제로 오천 년 이래 일본은 문화적/기술적으로 늘 우리에게 혜택을 받고 도움을 받았다. 단지 조선 말기 권력자들의 내부 세력다툼에 조선이 스스로 기울어졌을 때 단 한번 한반도를 앞섰다.
 
오천 년 중에 단지 백여 년만을 한반도에 앞섰던 것이기에 일본이 우수한 것이 아니라 한민족이 잠시 내분에 휩싸여 국세정세에 뒤떨어진 탓에 일본에 뒤쳐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다시 서서히 뒤졌던 각 분야에서 한국의 추월이 시작되고 있다. 이 추월은 앞으로 문화, 경제, 첨단 산업에서 시작되어 모든 분야의 추월로 완결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아베류들은 향수에 빠져 예전 우월감과 점차 격차가 줄어드는 불쾌감을 이용해 극우/보수 세력들을 부추겨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나 몰두한다. 세계적인 국가 경쟁력을 생각해 정책을 펴야하건만 국가경쟁력은 무시하고 국내 인기만을 고려한 악의적인 정책인 것이다.
 
어쩌면 조선말기 세상 바뀌는 것은 관심 없이 내부권력 다툼에만 매달렸던 조선의 권력자들과 흡사한 모습니다.
 
이미 환경적으로도 원전사고로 온 국토가 오염 범위에 있기에 국민들은 방사능 감염으로 각종 질병들이 늘어나고 쇠약해갈 것이다.
 
그로인해 가뜩이나 고령화 사회로 어려운데 장노년 세대는 이미 경쟁력이 무뎌졌거나 무뎌지고, 새롭게 미래를 걸어야 할 신생아가 태어나고 아이들이 자라도 방사능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기에 허약하고 사회적 비용이 크다.
 
결국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 자멸의 운명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그런 시기가 현세대가 살아 있을 때 온다고 본다.
 
게다가 현대 사회에서 독재국가(준독재국가)가 민주국가를 이긴 사례가 없다. 다양성이 통제된 독재사회는 잠시 어느 정도까지는 급성장 하지만 한계에 금방 다다르기 때문이다. 자율성과 창조성에 결여되기에 단순 반복기술이 필요한 부문까지는 잘해가도 그 이상이 요구되는 첨단사회에서는 경쟁력이 뒤쳐질 수밖에 없다.
 
결국 민국국가, 자유사회가 사회 시스템뿐만 아니라 경제력도 이기게 된다. 그래서 반드시 대한민국이 일본을 이긴다. 우리나라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일본은 뒤처질 것이다.
 
거기에 더해 참으로 불행한 이야기지만 강력한 자연재해까지 발생하면 더더욱 한일 격차는 벌어질 것이다. 물론 평범한 일본 국민들은 억울한 피해자고 불쌍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국민과 국가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반성할 줄 모르는 야비한 전범국과 그 국민들에게 내려지는 세상의 심판이다. 그것이 일본이 자업자득으로 벌어진 운명이고 숙명이다.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원래 그 모습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 예전 사신(외교관)이 신발도 못 신던 후진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점점 자멸로 쇠퇴해 동아시아의 변방국이 될 것이다. 지난 오천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또 그때가 되면 간악한 섬나라 근성으로 한국에 살랑거리며 머리 숙이고 다가올 것이다. 그러면 그 예전 한반도가 일본을 가르쳐주었듯이 다시 가르쳐 주면 된다.
 
하지만 ‘먼저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말처럼 예절과 반성을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한다. 문화와 기술을 알려주기 전에 야비하고 이중적인 도덕성을 뜯어고쳐주고 사악하고 악날한 근성을 개조시켜야 한다.
 
점차 벌어질 국력차를 이용하고 국제화된 한류를 통해서도 최대한 일본의 실상을 알려 세계인들뿐만 아니라 일본 자신들도 모르던 과거를 알게 해야 한다.
 
일본인들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가뜩이나 도덕심이 부족한 국민들인데 자신들의 악행을 알려준 사람도 없고 배운 적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스스로의 잘못을 알게 해주고 부끄러움을 자극하고 스스로 반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에 관계 개선을 생각해야 한다.
 
역사 이래 한반도의 도움을 계속 받았으면서도 감사함을 모르는 열도인들에게 도덕심과 예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또한, 그렇게 늘 악질적 발톱을 숨기고 사는 야만족들에게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계속 은혜만 베풀기보다는 역사적으로 이어진 열도의 비뚤어지고 어긋난 도덕성과 인간성을 강제로 억지로라도 바꿔주어야 한다. 그 방법이 막연할 수 있지만 할 수 있는 국가 역량을 다 동원해서라도 일본은 그렇게 대해야 한다.
 
미래 한일관계의 시작은 그렇게 ‘사람 만들기’ 관점으로 펼쳐지고 이어가야 한다. 그것이 아시아의 평화와 정의로운 국제질서에 부합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