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3.

혐오의 연대는 왜이리도 쉬울까?





‘사회의 소수자는 연대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 말은 그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성, 비정규직, 성적소수자, 장애인, 노약자는 사회적으로 약자, 소수자이지만 각자의 상황, 요구가 다르니 모두가 함께 전선을 형성한다는 건 쉬운게 아니죠.
오히려 여성에게는 마초 게이는 타도 대상이고 꼴통우파 노인은 인터넷의 공적에 가깝다고 할수 있습니다.

‘스타가 되면 여성의 xx을 당겨도 된다’같은 말을 하던 트럼프는 멕시코 난민들을 ‘강.간범’이라고 부릅니다. 트럼프가 갑자기 여성주의자라도 된걸까요?
페미니스트 윤김지영은 예멘 난민의 한국여성에 대한 강.간 가능성을 얘기하고 엄마부대 주옥순은 갑자기 제주도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난민반대운동을 하고 가짜뉴스공장 에스더의 가짜뉴스를 맘까페의 여성들까지 인용합니다.
보수 신문방송들이 당청과 갈등을 일으키는 민노총의 입장을 대변하기 시작하고 민주당내 특정인물을 솎아내거나 반대로 쉴드치기 위해서 가로세로뉴스같은걸 인용하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쳐다보기도 싫은 존재들과 기꺼이 손을 잡고 그들의 말을 인용하는 그 힘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차라리 ‘혐오는 돈이 된다’는 말을 믿고 싶습니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돈이라도 버는게 좋죠.